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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와 올드 팜 더비를 통해 본 유럽 축구의 정체성
제 880 호    발행일 : 2014.09.01 

들어가며

  “J리그 또 인종차별 논란, 바나나 흔든 요코하마 팬 ‘무기한 입장금지’(2014. 08. 25)”, “유럽축구는 인종차별과 ‘전쟁 중’(2014. 05. 12)”,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탈세 몸살’(2013. 06. 26)”, “최강 브라질 축구에 숨은 부패.독재.큰 모자 형님들(2014. 06. 10).” 이 기사들은 최근 1년 사이에 스포츠 면을 장식 한 제목들이다. 제목을 살펴보면 단순 스포츠로 알고 있던 축구가 인종차별, 부패, 독재 등과 같은 정치적인 사안들과 묶이며 축구의 정치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축구의 정치화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닌 유럽축구가 시작되던 그 시기부터일지 모른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정치선동을 위한 도구로, 지배계급의 지배수단으로, 종교의 특수성 강화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상만 있을 뿐 이를 특정적으로 나타내는 언어적 표현이 없었을 뿐이다.
  미디어, 인터넷 등의 발달로 인하여 현재 우리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독일의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앙 등의 해외 축구 리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활동했었다. 이제 더 이상 유럽 혹은 다른 리그에서의 문제들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에 유럽에서 다시금 거세지고 있는 인종차별, 구단주들의 부패 문제, 팬들의 폭력성 문제들은 우리로 하여금 유럽리그의 정치화 바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 기고에서는 유럽리그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축구의 정치성을 정체성의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Guilianotti은 <축구의 사회학, 지구를 정복한 축구공, 지구를 말하다>란 그의 저서에서 스포츠에서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첫째, 팀과 팬과의 관계는 지역에 연고를 둔 팀을 응원하는 형태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팀의 출현으로 지역과 무관하게 국가적 차원에서 응원하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둘째, 세계화의 영향으로 지역과 구단의 사회적.정치적 연결이 해체되고 국제적인 문제를 부각시키는 세계적인 시각이 출현하였다.
  하지만 본 기고는 이탈리아의 축구팀들과 올드 팜 더비(셀틱vs레인저스)의 사례를 통해 유럽리그에서만은 이 요인들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 형성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과연 유럽리그는 왜 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고 과거와 같은 폐쇄적인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것일까? 유럽리그의 정체성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스포츠의 역할과 정체성과의 관련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국가나 지배층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생산하고 확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비판이론은 스포츠를 단순 도구적 위치가 아닌 여러 층위의 사회집단들이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서 경쟁하고 투쟁하는 영역에 놓는다. 더불어 상호작용이론에서는 스포츠 참여자가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함으로써 스포츠의 의미가 구성된다고 이해한다.
  비판이론과 상호작용이론을 혼용하여 축구에 적용해보면 축구는 사회가 부여하는 의미가 투사되는 정체성의 반영물이며,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조작이나 동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중에 의해 의미가 변화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구성물이기도 하다. 이 과정 속에 지배와 저항이라는 정치적 성격이 포함되면서 정체성의 정치가 만들어진다. 이대희는 <스포츠와 정체성의 정치>에서 만일, 단일한 사회적 정체성이 강조되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람이 정체성의 노예가 되고 이럴 때 정체성은 폭력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걱정은 유럽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서 현실이 되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현재의 팬들은 축구팀에 대한 극단적인 정체성을 투영하고, 그 팀과 자신을 동일시화 한다. 때문에 자신의 팀을 향한 모욕적 행위들을 자신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으로 간주하여 상대방에 폭력을 가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탈리아 축구와 인종차별 정체성

  AC밀란, AS로마, 유벤투스의 감독을 차례로 맡았던 파비오 카펠로는 “이탈리아 축구는 위기에 처해있다.”, “극성 팬들이 세리에 A를 망치고 있다”라고 이탈리아 축구의 검은 미래에 대해 말했다. 사실 이탈리아 세리에 리그는 2006년의 ‘칼치오폴리’라 불리는 축구계의 부패, 음모, 승부 조작의 여파를 겪으며 인기를 잃어 가고 있었다. 더불어 최근 이탈리아에서 불고 있는 ‘인종차별’문제까지 겹쳐 이탈리아 축구는 더욱더 하락세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탈리아 축구는 부패와 인종주의로 얼룩지게 된 것일까? 이 문제는 이탈리아 축구 구단이 중산층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스페인이나 잉글랜드와 다르게 기업-마피아-정부라는 거대 비즈니스적 삼각구도에서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는 1948년 오랜 군주제를 끝내고 공화제가 시작되었다. 이 전후과정에서 제도와 권력을 지닌 ‘바틴칸’이 영향력을 미쳤다. 1929년 무솔리니 파시즘과 교황청은 라테란 조약(콩고르다 종교협약)을 맺어 ‘신성동맹’을 유지해오며 파시즘에 대해 침묵했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말부터 강해진 사회주의 성향의 노동운동은 그 이후 이탈리아의 역사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이탈리아의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디어, 문화, 국가권력과 손을 잡아야 했다. 이때부터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표명해 줄 축구구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축구구단은 지역, 계급, 욕구도에 따라 각 클럽의 성격이 다르다. 유벤투스는 독일을 대표하는 피아트 자동차의 조반니 아녤리(Giovanni Agnelli)에 인수되었다. 유벤투스는 창단 때부터 이탈리아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가급적 토리노 출신 선수들을 주전으로 사용하며 인종적 민족주의를 앞세운 무솔리니 파시즘의 외연기관처럼 되었다. 그는 유벤투스와 피아트라는 막강한 자본을 기반으로 파시즘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AC밀란은 오랫동안 노동자 계급을 기반으로 해왔다. 하지만 AC밀란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전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는 이 클럽을 인수한다.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과 정치권력, 경제력, 미디어를 통제하면서 그의 극우적 이념을 확산시켰다. 더불어 축구클럽을 통해 권력과 경제력을 더욱더 키워나갔다. 초창기 AC밀란은 밀라노 사람만을 기용했다. 이를 거부하며 국제주의를 천명하며 나온 것이 인터밀란이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복잡한 구단의 관계 속에서 축구와 정치가 검은 거래로 얼룩지는 일은 매우 쉬웠다. 더불어 이탈리아의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부패는 사라질 수 없는 유혹이 되었다.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2006년에 쓴 <이탈리아의 세리에 축구와 미국 NBA 농구>에서 “연결고리가 드러나지 않는 이탈리아식 부패 체계”를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치와 사회 구조는 가족적 인간관계를 특징으로 하는데, 경제시장, 국가기구, 범죄조직 그리고 축구계까지 ‘공존의 유사 가족관계’로 뒤엉켜 있어 조직적이고 혈연적인, 그러니까 그 맥락 안에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부패 스캔들의 구조가 만연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속되는 경제침체와 부패의 심화는 이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 외국인에 대한 환멸을 가져오게 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외국인들로 인하여 자신들이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인종차별주의와 파시즘의 부활을 가져왔다. 특히 축구구장 안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은 더욱 더 심각했다. 일례로 AS 로마 팬들이 AC 밀란의 마리오 발로텔리와 케빈-프린스 보아텡 선수에게 극심한 모욕을 안겨주었다. 더불어 파시즘을 찬양하는 팬들과 감독이 생겨났다. 2012년 11월에 SS 라치오 팬들의 토트넘 팬 공격 사건이 그렇다. 30명가량의 토트넘 팬들이 모여 있던 로마의 작은 술집에 “유대인은 물러가라!”, “죽어라!” 같은 욕설을 퍼부으며 괴한들이 공격을 하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경제침체, 축구 구단과 정치인들 사이의 부패, 끊임없이 밀려오는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팬이라는 이름으로 레이시즘과 파시즘을 축구팀의 정체성으로 형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드 팜 더비(셀틱vs레인저스)와 종교적 정체성

  스코틀랜드에서 축구와 종교의 분할은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글래스고 셀틱의 올드 펌 더비(The Old Firm Derby)가 핵심이다. 수사 월프리드(Walfrid)는 아일랜드의 가난한 이주민들의 정체성을 되찾고 빈민 구제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 위하여 셀틱을 창단하였다. 셀틱의 발족에는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톨릭 신도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두려움을 분출하고 아이들에게 가톨릭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셀틱을 창단했고, 셀틱은 그 기세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승승장구 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도들은 셀틱의 성공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레인저스는 원래 특정 종교나 염원을 지닌 구단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셀틱과의 경기에서 이기게 되자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신도들은 이들에게 종교와 정치적 염원을 부과했다. 그렇게 레인저스는 정치와 밀접해져 갔으며, 가톨릭에 강하게 반대하는 개신교의 입장과, 가톨릭 신자 선수들과 계약 금지를 포함하는 반가톨릭적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1920년대 스코틀랜드는 대공황을 맞았다. 한정된 일자리와 빈곤 등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의 교회는 아일랜드의 위협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올드 펌은 갱의 소굴로 변모하였다. 레인저스 악당들로 이루어진 빌리 보이스 갱(Billy Boys gang)은 이에 맞먹는 셀틱의 맥그로리 보이스(McGrory Boys) 같은 단체와 맞붙어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1989년 전 셀틱 선수였던 모리스 존스턴(Maurice Johnston)을 레인저스에서 영입하면서 이들의 장벽은 무너지고 있었다. 레인저스가 비즈니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셀틱의 팬들은 레인저스를 향해 IRA의 위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몸싸움이 오가기도 한다. 셀틱과 레인저스 팬들의 모습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파놉티콘(panopticon 원형감옥)을 떠올린다. 벤담은 감방 수감자들에 대한 감시를 개선하기 위해 감시자의 노동은 최소화하면서 수감자에 대한 감시는 최대화하는 건물구조를 주장했다. 셀틱과 레인저스의 팬들은 축구장이라는 구조 속에서 상대편을 감시하고 선수들을 감시함으로써 자신과 상대를 억압하고 있다.
  이미 구단들은 축구를 통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인종의 구별도, 종교의 논리도 없는 오직 잘하는 선수와 그를 통한 승리만 존재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사람들은 앤더슨(Anderson)이 말한 실체를 확정할 수 없는, 이미지로서 마음에 그려진 상상의 정치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그 정치공동체 안에서 스코틀랜드 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들이 겪은 종교적 역사를 공유하며 종교정체성을 재생산하고 확대할 것이다. 이런 그들의 행동들은 상처뿐인 종교분쟁을 낳을 뿐이며 지속적으로 스포츠가 정치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양산해 낼 것이다.
  위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개인들은 축구팀에게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정체성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것을 보았다. 세계는 지금 스포츠 선수들의 국제적인 이동이 가속화로 인해 민족의 탈종족화(de-ethnicization)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실시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국적을 초월하는 팬들의 충성을 볼 수 있는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리그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더 공고히 하기 위해 지역기반의 축구팀에 과거부터 내려오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 원인을 역사학자 홉스봄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홉스봄은 ‘세계화, 국가 정체성, 외국인 혐오증’이란 세 가지 상극 관계가 민족주의를 발판 삼아 축구경기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된다고 하였다. 이 불만의 감정을 응집시키는 방법이 바로 경쟁구도를 통한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시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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