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만 불어불문학과 교수
 
순천 선암사로 향하는 길 위에서 사람은 정말 혼자 살 수 있을까,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250여 년 전에 ‘사람은 (결국) 혼자다’라고 말하고 ‘혼자 있자마자 행복하다’라고 썼다. 루소는 멋진 하루가 시작될 때 누군가 자기를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루소는 늘 혼자이길 바라고, 그리하여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자기 속에서 세계 전체를 향유하길 바랐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루소는 현실 사회를 피하여 조용히 궁벽한 시골에 파묻혀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루소는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타인을 필요로 하고, 이 타고난 불완전함이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가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할 길이 없는 우리 자신의 나약성은 필연적으로 행복을 위해 타인과 의논하고 절충하게 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다. '타인(les autres)'이란 산소다. 사람은 산소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듯 타인 없이 살 수 없다.
물론 타인이 늘 우리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인정하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이 경우 맹세는 전혀 소용이 없다. 존재는 변화하고 사랑은 소멸된다.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기울이는 애정, 그것이 가장 강렬한 감정들 가운데 하나라 할지라도 그 애정은 변모하고, 심지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기울이는 애정이라고 해서 그보다 더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아이들과 우리 사이에 차츰차츰 생겨나는 거리를 받아들여만 하고, 종국에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시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우자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늙어가면서, 변해가면서, 이런 저런 사람에게 사랑스러웠던 나는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그 관심이 내 삶을 이루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행복은 ‘덧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을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은 휴머니스트들이 즐겨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휴머니스트는 영원한 삶이라는 궁여지책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행복이 깨지기 쉽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의식이 무한함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조건을 이해한다. 즉 우리의 무한에 대한 욕구와 실제 우리의 유한성 사이의 비극적인 불일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쳐보려는 우리의 시도가 존경 받아 마땅한,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