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조직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늘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인성 교육에 힘써야 하는 유치원 교사와 초등학교 교사가 현실적으로 학습 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 어느 선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할 지 늘 숙고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교육과 연구에 충실해야 하지만, 교육부의 정책이나 외부 기관의 평가를 도외시할 수도 없다.
전 지구적으로 경쟁과 효율이 중시되고 있다. 현 정부도 그렇다. 성과급 연봉제를 실시하라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여기에 외부 평가 기관까지 거든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외국인 학생 비율과 영어 수업 비율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학교 당국은 이것을 전면 수용하기도 어렵고 완전히 반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학교는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외국인 등록자의 다과(多寡)가 과연 우리 학교 교육에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해야 실질적으로 그들과 우리 학생들에게 유익한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영어 교육이 필요한 교과목이 무엇인지, 능력 있는 교수가 영어 수업에 임하고 있는지, 학생들은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히 외부 평가 기관의 지표에 충실하면 안 된다. 외부 평가 기관을 그대로 추종한다면, 외부 평가 기관이 실제로는 학교를 운영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는 기부금이나 발전 기금 모금에 진력하기보다는 원칙에 맞게 교육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제도를 정비하여야 한다. 하나의 예로 지난 추석 전후에 결강한 사례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는 이를 눈감아서는 안된다. 또한 학교는 내년부터 학생들의 강의 평가 점수가 낮은 시간 강사를 퇴출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는 먼저 강의를 잘할 수 있도록 훈련을 강제로라도 시켜야 한다. 제재 대상은 시간 강사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전임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 연약한 시간 강사만 강제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정의에 맞지도 않는다. 필요하면 정년을 1년 앞둔 교수의 3시간 강의 제도도 축소해야 한다.
이외에도 소위 명문 대학 대부분이 시행하고 있는 16주 강의, 학생들 엠티의 금요일 저녁 출발 등을 학교는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교외 수업의 무분별한 공결 시행도 다시 보아야 한다. 도서관 구입 도서가 전공 서적보다는 취업 수험서 비중이 높지는 않은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어떻게 한국 거점 국립대학이 될 수 있는가?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출발점이다.
이와 동시에 문과와 이과 정원 비율의 조정 문제, 유사 학과 통폐합과 이를 재원으로 한 새로운 발전 방향으로의 전폭적 지원(우리 학교가 국립대학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면학 분위기 진작을 위한 중문 유흥가의 문화적 탈바꿈 문제 등도 검토해 주기 바란다.
돈과 평가에 주체적 능력 없이 무력해지면, 개인도 조직도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된다. 지식을 생산하고 학생들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 것을 가르치는 대학이라면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