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배 수의학과 교수
BK21 동물의료·생명과학 사업단 단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계 또는 인류가 합성한 수많은 화합물질들이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야생동물, 조류, 어류 및 인체에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들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물질들을 과학자들은 ‘내분비계 장애물질(Endocrine disruptors,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이들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일상 생활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플라스틱, 캔, 세제, 내연제, 음식, 완구, 화장품, 살충제, 약품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우리는 이들 물질을 음식물, 음료수, 약품, 화장품 등을 통해 구강 또는 피부로 섭취하고 있다. 동물과 사람이 다양한 이들 화합물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들 화합물질에 대한 정확한 부작용은 제대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
I. 내분비계와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중요성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동물과 인체에 존재하는 호르몬들, 예를 들어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 안드로겐(남성 호르몬), 갑상선 호르몬 등과 같이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호르몬과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다. 이들 물질은 정상 호르몬의 합성, 운반, 결합, 활성, 배출 등을 방해하여 생식, 발육, 행동 등과 같은 정상적인 항상성을 방해하고 세포내 수용체와 결합하여 정상적인 호르몬 활성을 어렵게 한다.
호르몬은 난소, 정소, 뇌하수체, 갑상선, 췌장 등과 같은 내분비계 조직에서 생성되어 혈액으로 분비되고 우리 몸에서 조직과 조직의 소통과 조화를 지시하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예로 이들 호르몬은 신경계, 생식기계, 신장, 장, 간장의 기능을 유지하거나 조절함으로써 에너지 균형, 생식, 성장과 발달, 항상성유지, 스트레스, 조직 손상에 대해 반응한다. 다시 말하면,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이들 정상적 호르몬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구조와 활성을 갖고 있어서 정상적 호르몬 시그널을 방해한다.
II.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작용 방식
내분비계 장애물질들은 내분비계와 호르몬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상태에 따라서 첫째, 체내의 에스트로겐 또는 안드로겐과 같이 정상적인 호르몬과 유사하게 작용하여 호르몬의 작용을 과다하게 유도하는 경우와 둘째, 항에스트로겐성 또는 항안드로겐성 내분비계 장애물질과 같이 체내 호르몬의 결합을 방해하여 정상적인 시그널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 셋째, 정상적 호르몬과 수용체의 합성과 조절을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III.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종류
광범위한 물질들이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일부만 소개하고자 한다. 디에틸스틸베스트롤(DES), 다이옥신, 다이옥신 유사물질, 폴리염화비닐류(PCBs), DDT 등은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잘 알려진 물질들이다. 또한 일부 살초제와 비스페놀 A와 같은 플라스틱 가소제는 동물실험 결과,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의심받고 있다. 비스페놀 A는 인류가 합성한 화합물로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 제품, 음식물과 음료수 캔, 에폭시 수지, 충치충전재료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물질로서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 제품에서 방출되는 화합물질이다. 여기에 폴리염화비닐 플라스틱의 가소성을 증대시키는데 이용되는 프탈레이트도 내분기계 장애물질로 간주되고 있다. 프탈레이트류 중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di-(2-ethylhexyl) phthalate)라는 화합물은 승용차, 의류, 식품포장, 완구류, 의료용구 등에 쓰이는 소재로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현재 남성 신생아의 정소 발육에 영향을 주는 물질로 위험성이 경고되고 있는 물질이다.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갖는 영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 작용기전이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태아의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조절하면서 정소의 기능에 영향을 줘 포유류의 생식과 생식력을 떨어뜨린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그림 1). 피토에스트로겐(Phytoestrogen,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자연계 식물에 있는 것으로서 호르몬 활성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제니스테인과 다이드제인이라는 물질이 콩으로 만든 제품에서 흔히 발견된다.
▲ 그림 1. 임신기간 중 투여된 내분비계장애물질에 의한 외부성징 변화. A, 대조물질 투여 후 정상적인 외부 성징; B, DEHP 투여군의 유두정체, C, DEHP 투여군의 요도하열; D, DEHP 투여군의 비정상 정소하강 및 분리.
IV. 발육기의 노출
내분비계 장애물질이 기관형성과 신경계 발달에 중요한 태생 전후 초기에 노출되면 내분비계 암, 수정능저하, 당뇨, 비만, 갑상선 질환 등이 발생한다. 동물에게 저농도의 자연 에스트로겐인 에스트라디올 또는 비스페놀 A와 같은 내분비계 장애물질을 태아발육기와 성체기에 투여하면 노출되지 않은 개체보다 노출된 개체에서 전립선암이 쉽게 발생한다. 즉, 내인성 스테로이드의 신경내분비계 발육 및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방해하는 것이다.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의한 내분비계 장애는 노출 시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그 영향을 구분한다. 첫째, 발생 또는 발달기에 노출될 경우 스테로이드의 비가역적인 영향을 받게 되어 이를 ‘기관형성형 영향(organizational effect)’이라고 한다. 반면, 성장이 완전히 끝난 뒤의 영향은 가역적이기 때문에 ‘활성형 영향(activational effect)’이라고 일컫는다. 특히, 성호르몬(에스트로겐 또는 안드로겐)은 발생기에 있어 신경발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장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가지 성적장애가 나타난다. 또한 내분비계 장애물질과 자연계 에스트로겐이 태아발육기에 노출되면 전립선 유전자에도 영향을 주어 나중에 전립선 질병의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고 한다.
V. 저농도노출
인체의 저농도 노출에 따른 보고는 드물지만, 태아발육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내분비계 장애물질을 저농도로 동물에 노출시키면 수컷 수정능과 산자 숫자의 감소, 비정상적인 수컷 생식기관 형성, 생식능력 저하 및 단축, 사춘기 조숙증 등과 같은 암컷 생식기계 질병 증가, 유선암, 난소암 및 전립선 암 증가 등이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내분비계 장애물질 노출에 따른 영향은 저농도 노출이 고농도 노출보다 오히려 더 큰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으며, 이에 따른 반응 곡선은 농도에 따라 반응이 증가하는 방식이 아닌 U자형이거나 ∩형인 형태를 띤다는 것이다.
VI. 세대간 영향-후생학적 영향
내분비계 장애물질이 노출된 모체뿐만 아니라 노출된 후손에게 영향을 준다는 보고가 여러 연구자에 의해 발표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DNA 메틸화와 히스톤 단백질의 변형과 같은 후생학적 과정을 리프로그램하는 생식세포(난자와 정자)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변화된 난자와 정자 정보는 그대로 다음 세대로 생식선 전달(germline transmission)이 가능하다.
DNA메틸화는 CpG dinucleotide의 시토신 염기에 메틸기가 공유결합을 함으로써 DNA 분자 구조가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DNA 메틸화가 많이 이루어지면 유전자 발현(단백질 생산)이 감소하지만, 반대로 메틸화가 적게 이루어지면 유전자 발현이 증가한다. DNA 메틸화는 상대적으로 조직 특이적 유전자 발현, 유전자 각인과정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안정화된 과정에 나타난다. 히스톤은 DNA를 팩킹하는 단백질로서 히스톤의 아세틸화, 인산화, 메틸화 정도에 따라 전사적 활성형인 느슨한 구조와 전사적 불활성인 응축 구조로 구분된다. 예로써 아미노산 라이신이 아세틸화되면 히스톤 꼬리부위의 양극성 성질이 제거되고 DNA/히스톤 결합은 느슨한 구조로 전환됨으로써 전사조절인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그림 2).
▲ 그림 2. DNA 메틸화와 히스톤 변형. DNA 메틸화와 히스톤의 변형은 유전자 전사과정을 상호 협력하여 조절한다.
초기 생식세포기는 광범위한 부위에서 메틸화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대간 후생학적 영향에 중요한 시기로 간주하고 있다.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후생학적 영향에 대한 첫 번째 연구는 사인언스지에 발표된, 빈클로졸린을 이용한 연구다. 이 물질은 포도재배에 많이 이용되는 항진균성 농약으로 실험용 쥐에게 이들 물질을 임신 8~14일에 노출시키면 고환의 생식세포의 자연세포사가 증가하며, 성체가 된 후 정자의 활동성과 농도가 감소되는데 이런 현상이 4세대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생리현상 변화는 F1의 정소, F2와 F3 성체의 정자에서 나타난 DNA 메틸화의 변화가 원인인 것으로 진단되었다. 즉 모체가 내분비계 장애물질 빈클로졸린에 노출되면 비록 자손이 빈클로졸린에 노출되지 않아도 자손의 DNA에 그 후생학적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의미다.
DES는 합성 에스트로겐으로서 1938년에 개발되어 유산 방지를 위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DES를 복용한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생식기에 종양이 생기는 것으로 밝혀져, 1971년에 사용이 금지되었다.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DES를 투여하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이들 자손에게도 그 영향이 지속된다. 즉 모체 쥐가 DES에 노출되면 암에 대한 감수성이 그 자손 2세대 이후에도 관찰된다. 이와 같은 질환이 전이된다는 것은 후생학적 영향(epigenetic effect)으로 설명되고 있다. 암뿐만 아니라 어미가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노출되면 그 자손에게 잠복 고환 등과 같이 수정능 결핍이 그 차세대 자손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 화합물이 수컷의 생식세포발달에 영향을 주어 DNA가 돌연변이 되지 않고도 리프로그램이나 발현유전자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VII. 앞으로의 연구전망
내분비계 조직에 미치는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생체외(in vitro) 및 시험관내(in vivo) 모델 설정, 저농도 노출에 대한 기전 연구, 생식기계 및 내분비계 시스템에서 세대간 영향에 대한 후생학적 영향 평가, 성호르몬 또는 갑상선 호르몬 의존성 중추신경계 발육과정에 대한 내분비계 장애물질 영향 평가 등과 같은 기초 연구, 갑상선에 대한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영향을 감축시킬 수 있는 전략적 연구, 인체에 외인성 에스트로겐 및 항안드로겐 노출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물질 개발, 태아기에 노출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물질의 개발 등과 같은 임상연구, 내분비계 장애물질에 과도하게 노출된 집단을 대상으로 노출과 반응에 대한 코호트 연구, 역학연구에 필요한 지표물질 개발 등의 연구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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