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일(심리학과 강사)
개요
심리학은 다른 여러 분야와 접목되어 다양한 주제를 만들곤 한다.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설득심리학, 광고심리학 등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고, 여러 현상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 상당히 난해한 심리학 이론들 때문에 쉽게 지치곤 한다. 기본적인 심리학 이론을 학습하지 않았기에 학습의 답보는 물론 재미도 없다.
언어심리학도 마찬가지이다. 언어심리학은 피상적으로 보면 언어학과 심리학이 융합된 분야이고, 언어를 주제로 한 심리학 연구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언어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인지)에 작용하고,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언어심리학이 다루는 주제는 첫째, 언어를 처리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표상(마음속에 존재하며 표출이 가능한 지식 구성체)되어 있는가? 둘째 언어를 습득 혹은 획득하고 산출하는 능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셋째 언어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의 뇌 구조와 언어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뇌는? 동양과 서양,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그 밖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지적 차이? 계층마다 언어사용의 차이? 등 우리가 심리학개론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여러 현상들이 언어심리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분야를 기술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로울 수 있는 언어심리학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과거 연구의 전통을 잇는 연구를 소개하고 현재와 미래의 연구동향을 살펴볼 것이다.
초기 언어심리학
(언어학 + 심리학 = 언어심리학)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분트(Wundt)가 언어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의 통찰을 제기한 이래로 언어는 심리학의 필수적인 연구주제였다. 그러나 연구방법의 문제점과 행동주의 학자들의 영향으로 현재의 언어심리학다운 연구는 진행되지 못하다가 1950년대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 이후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당시 언어심리학 주제는 언어학의 거장인 촘스키가 제안한 보편문법이 실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가를 다루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다음의 연구사례를 보자.
<문장1> “철수가 영수가 자기를 변호했다고 말했다. ”
<문장1> 은 언어학과 심리학이 어떻게 융합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언어심리학이 언어지식을 중요한 연구소재로 다루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장1>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성을 가진 문장이다. 왜냐하면 재귀대명사 ‘자기’는 ‘철수’도 ‘영수’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귀대명사를 ‘자신’으로 바꾸면 <문장1>을 해석하는데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즉, ‘자신’을 사용하면 ‘철수’ 보다는 ‘영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된다. 반면 ‘자기’의 경우는 ‘철수’일 가능성이 더 높다.
최근 이러한 현상에 대한 언어학 연구가 있다. 과연 재귀대명사가 <문장1>과 유사하게 나타났을 경우에 어떤 명사(철수 vs 영수)를 참조하는가?
말뭉치(corpus)를 분석해 본 결과 ‘자기’는 ‘철수’를 참조할 가능성이 높고, ‘자신’은 ‘영수’를 참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문장1>은 또 다른 언어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문장1>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문장 2>와 같은 구조를 가질 수 있다.
<문장2> “철수 said that 영수 defend himself.”
영어에서 <문장2>의 himself는 절대로 ‘철수’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촘스키가 제안한 장벽이론으로 해석되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재귀대명사(himself)는 that절을 넘어서 명사를 참조할 수 없는 제약을 가지고 있다.
<문장1>에 나타나는 현상을 장거리결속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촘스키의 보편문법과 상충되었고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축적되면서 촘스키는 자신의 문법을 수정하였고, 잦은 이론의 변화가 언어학자는 물론 심리학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장3> “철수가 영수가 자기를 계발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문제는 제외하고 언어학적 결과를 심리학으로 접근하면 다른 연구가 된다. 언어학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반면, 언어심리학은 그 사용에 있어서 사람들의 인지과정을 다룬다. <문장1>을 약간 변형하여 <문장 3>으로 다시 써 생각해 보자.
<문장1>과 <문장3>의 차이점은 가운데에 있는 동사를 ‘계발했다’로 바꾼 것이다. 언어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재귀대명사 ‘자기’가 ‘철수’를 참조한다고 가정하면 이 문장을 잘못 해석하게 된다. 왜냐하면 ‘계발하다’라는 동사는 타인을 목적어로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문장4>의 경우는 <문장3>과는 반대로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문장4> 철수가 영수가 자기를 회피했다고 말했다.
<문장 3>과 <문장4>의 재귀대명사를 '자신'으로 바꾸어 보라. 아마도 '자기'와는 다른 반대 현상을 체감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언어심리학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재귀대명사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언어학적 결과와 일치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심리학에서는 독특한 과학적 방법을 이용한다. 글을 읽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분석하여 실제 단어, 문장, 덩이 글을 이해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사람들의 눈동자를 추적하여 현재 읽고 보고 있는 위치를 탐지한다.
언어심리학적 결과를 보면 언어학에서 제시하는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조금 복잡한 결과들이 위 문장들을 이해하는 과정에 나타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간결화하면, 재귀대명사(자기, 자신)는 첫 번째 명사 ‘철수’에 참조되고, 뒤에 나오는 동사에 따라 나중에 참조하는 대상을 바꾼다. 즉, <문장3>에서 ‘자기’는 우선 ‘철수’이고 ‘계발했다’라는 동사를 읽을 때, ‘영수’로 바꾸는 과정을 탐지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언어심리학
지금까지 언급한 연구 예는 언어학적 지식과 관련된 연구결과여서 주제 자체가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축적된 연구들이 커다란 자료가 되어 현재는 실용적인 분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독서능력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글을 읽는 전문가들이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하지만 읽는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 경험으로 과거 혹은 현재에 글을 읽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내가 읽는 게 읽는 게 아니야' 현상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의 교육 수준, 글의 난이도, 피로 등등. 이런 것들을 모두 차치하고 실제 독서능력을 지적능력처럼 측정하여 숙련 독자들의 읽기 패턴을 알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다양한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으며 정확한 진단을 통해 독서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독서훈련의 개입이 전문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1] 미숙학 독자의 읽기 패터
[그림2] 숙련된 독자의 읽기 패턴
독서능력의 개인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광고나 설득심리학처럼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이해가 쉽지 않다. 하나의 실험 사례가 직관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림1]과 [그림2]는 동일한 글을 제공하고 참여자의 읽기 패턴을 추적한 결과이다. 아래의 그림들은 눈동자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를 연결하여 얻은 결과로 검은 점은 눈동자가 머문 위치를 나타내고 괄호 밖 숫자는 눈이 멈춘 순서를 나타낸다. 그리고 괄호 안의 숫자는 눈동자가 멈춘 시간을 1/1000초 단위로 측정한 값이다. 점들이 어절 아래와 위에 표기되어 있는데 위에 표기된 점과 숫자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읽다가 다시 돌아온 것을 나타낸다.
[그림2]가 숙련된 독자의 읽기 패턴이다. [그림1]과 달리 눈이 고정된 수가 적으며, 어절별로 읽기 시간을 보면 상당히 짧다. 뿐만 아니라 눈이 고정된 형태가 단조로우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이 연구는 다른 요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구동축(951 vs 400)’, ‘내연기관(934 vs 350)’, ‘플라이휠(1385 vs 350)’ 과 같은 단어에 눈이 고정된 시간이 확연히 다르다. 숙련되지 않은 참여자는 해당 단어에 대한 읽기 시간이 매우 길게 나타났으며 전체 읽기 시간도 매우 길었다. 이것은 친숙치 않은 단어 이해의 어려움이 글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전문지식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라, 단어 하나의 읽기 시간이 0.5초(500ms) 차이가 난다면, 문장을 읽는 시간, 문단을 읽는 시간, 페이지를 읽는 시간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겠는가? 아마도 어마어마한 시간의 차이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언어심리학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재귀대명사 이해 과정에 대한 연구와 독서의 패턴을 관찰한 연구를 들어 언어심리학 연구 분야를 소개하였다. 물론 이 분야의 연구는 매우 다양하여 한정된 지면에 기술하기는 불가능하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시중에 출판된 언어심리학 교재를 읽기를 추천하지만 그 전에 필요한 심리학적 지식을 획득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현재 연구동향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이동이 간편해져 언어에 따른 문화 연구가 초점이 되고 있다. 이중언어자(bilingual)의 언어처리에 대한 연구가 외국어 학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다. 여러분은 아래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어권 문화에서 생후 9세까지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아동이 있다. 이 아동은 한국자녀로 한국말은 능숙하지만 독서가 익숙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동화책을 읽는다면 완벽한 이해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 아동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아마도 단어일 것이고 문장의 문법적인 정보일 것이다. 동화책의 이해는 그 다음 문제가 분명하다. 아래는 ‘혹부리 영감’을 읽고 있는 아동과 아빠의 대화를 묘사한 것이다.
아동 - 아빠 ‘영감을’이 뭐야?
아빠 - 아아. ‘영감’은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부르는 호칭이야.
(아동이 몇 줄 더 읽은 후)
아동 - 아빠 ‘영감이’는 뭐야?
아빠 - 아까 설명했잖아.
아동 - 그럼 아빠 ‘영감과’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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